주연님께서 2022년 링글 글로벌 컨퍼런스의 첫 대문을 열어 주셨는데요, 생생한 경험담 공유를 위해 실제 팀원들 이름까지 일일이 언급하면서 열정적으로 강연을 진행해주셨습니다. 덕분에 청중분들도 주연님의 경험담 공유에 더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민감한 정보를 배제하고, 핵심적으로 강조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편집에서 전달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주연이라고 합니다. 저는 가슴이 뛰는 일을 하는 게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가슴 뛰는 일을 찾아서 그동안 많은 커리어를 밟아왔는데요. 그 과정에서 제가 성장할 수 있었던 포인트들을 몇 가지 소개해 보겠습니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American Express (이하 아멕스)는 MBA 졸업 후에 조인하게 되었는데요. 무수한 서류를 넣어 얻어낸 몇 안 된 소중한 오퍼였습니다. 힘든 여정을 거쳐 합류를 결정한 만큼 입사 전 스스로 마음을 다잡았죠.
“야, 진짜 잘해보자. 내가 언제 뉴욕 한복판에서 이렇게 똑똑한 사람들과 일해볼 기회를 가지겠나. 진짜 가진 역량을 120% 발휘해 보자!”
하지만 예상하시는 것처럼 전혀 잘하지 못했습니다. 셀 수도 없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죠. 한국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는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이 나에게 벌어지는지 너무 혼란스러웠습니다.
상황을 분석해 보니 원인은 언어였습니다. 일상 영어와 회사에서 쓰는 프로페셔널한 영어가 다름을 알고 나니까 제가 의견을 내는데 소극적이었던 거에요. 미국에서는 의견을 안 내면 “겸손하다” 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해를 못 했거나 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의견을 안 낼수록 조직 내에서 저의 영향력이 작아지고 동료들의 존중을 받지 못하고, 일을 잘 해내기 위한 다른 팀의 협조와 리소스를 받기도 어렵죠.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지속되었어요.
정신 차리고 저만의 극복 전략을 세워봤습니다.
1. 첫 번째 극복 전략은 영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조직에서 데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원분이 계셨어요. 보통 임원급이면 보고 자료의 요약된 텍스트만 읽을 텐데 항상 엑셀 파일을 열어보시는 분이었습니다. ‘아, 저분은 데이터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거죠. 마침 전사의 주요 어젠다가 데이터 인프라를 구축해서 의사결정 하는데 활용하는 것이었고, 저는 영어가 아니라 밤새도록 데이터를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기회가 왔어요. 큰 규모의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위해 제가 만든 데이터 구조를 제안했는데, 리더분이 그 제안을 채택하신 거죠.
2. 두 번째 극복 전략은 프로페셔널 영어를 따라잡는 거였어요.
양해를 구하고 미팅들을 녹음한 다음 출퇴근하는 왕복 1시간 반 동안 계속해서 다시 들었습니다. 또한 이메일 쓰는 범은 기존 방식을 모두 버리고, 무조건 다시 보면서 임원들이 쓰는 표현을 수집하고 반복 연습했어요.
3. 세 번째 극복 전략으로는 “항상 배우는 자세를 항상 가지자”였어요.
한국에서는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물어보는 게 실례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 당시만큼은 자존심을 버리고 주니어, 매니저 상관없이 완전히 이해될 때까지 미친 듯이 물어보고 다녔어요. 제가 입에 달고 다닌 표현이 “ Can you please elaborate?” 또는 “what is your thought process?” 였을 정도로 주변에 항상 묻고 다녔습니다.
이렇게 6개월 정도 실행하고 나니까 노력했던 것들이 자산이 되어서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꿔주었어요. 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졌고, 새로운 사람들에게 다가가니 네트워크 빌딩이 시작되었어요. 리더도 저에게 좋은 프로젝트를 주기 시작했죠. 프로젝트를 잘한다는 회사 내 긍정적인 평이 만들어지니까 사람들이 오히려 제가 무슨 생각을 하려는지 알고 싶어서 먼저 다가오고 조직에서 영향력이 생겼습니다. 악순환의 정반대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선순환 구조로 만든 문제 해결의 열쇠는 제가 노력한 것과 더불어 아까 말씀드린 데이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임원분이었어요. 무엇이 그의 마음을 움직여서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줬을까 다시 돌이켜 생각해봤어요.
“Made his life easier”
제가 데이터를 열심히 판 덕분에 그 임원분이 데이터를 가지고 인사이트를 더 쉽게 뽑을 수 있도록 만들어줬죠. 금융회사 내에서 이 업무가 정통 파이낸스 업무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중요한 업무였고, 잘 안되고 있었는데 제가 그걸 해결해준 거에요. 덕분에 저보다도 좋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된 그분의 입지가 강화되었어요. 이런 경험이 쌓여 아주 중요한 자리에서 저를 다른 임원들에게 소개하고, 계속해서 좋은 프로젝트를 제안했죠.
미국에 있는 개념인데 일종의 “커리어 스폰서쉽” 을 받게 된 거에요. 큰 규모의 회사에 있는 우수한 리더들은 potential successor를 키우고 싶은 본능이 있고, 우리가 좋은 커리어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우수한 리더들의 본능을 잘 건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멕스에서 행복을 찾고 있을 때 아마존으로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인터뷰도 좋았고 빠르게 오퍼를 받았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고민해야 할 것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옮기고 나서도 여기 아멕스에서처럼 잘 할 수 있겠냐는 고민이 가장 컸죠. 하지만 제가 행복한 길, 즉 가슴이 뛰는 일로 도전하기로 했고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이직 후 첫 6개월은 정말 정말 힘들었습니다. 아마존은 6 PAGER라는 문화가 있어요. 모든 보고를 PPT가 아니라 내 생각의 핵심을 담은 텍스트로만 작성한 문서로 진행합니다. 저를 고용했던 매니저분이 있으셨는데, 처음에는 잘해주더니 한 달 정도 지나니까 주말 새벽 2시마다 6 페이저를 수정한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페이지 전체에 빨간색으로 X가 있기도 하고, 단어 하나하나, 문법까지 고쳐서 보냈어요. 제가 쓴 문서가 학교 숙제가 아니고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보고서인데, 문서의 기본이 안 되어있으니 이분도 주변에서 압박을 받기도 하고 화가 난 거죠.
“Joo, you can't just sit on it”
저도 정말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저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진짜 잘리는 줄 알았어요. 그렇게 100개 이상의 수정 버전을 거쳐서 4개월을 둘이 씨름해서 중요한 분석 결과를 담은 6 페이저를 완성했어요. 그 매니저분이 정말 좋아하셨고, 나아가 임원분들을 모시고 이 보고서를 발표할 기회까지 만들어 줬어요. 일종의 아마존 데뷔 무대를 가진 거예요. 한번 기세를 타니까 발표를 본 다른 임원분이 이 보고서를 전체 조직에 공유하고 제가 쓴 보고서 때문에 중요한 마케팅 전략도 바뀌게 됩니다.
이게 스폰서쉽의 형태에요. 그들이 왜 저를 잘 봐줬을까 하면 물론 정답은 없어요.
“내가 너를 발견할 수 있게 너가 잘하면 나머지는 우리에게 맡겨. 우리가 키워주겠다.” 라는 거죠. 세계 최고 회사들의 성공한 리더들은 이런 마인드 셋으로 멘토쉽과 스폰서쉽을 실행하고 있어요.
아마존에서 좋은 프로젝트를 하고, 스폰서쉽이 생기면서 영향력이 커지고, 아까 초반에 말씀드린 선순환 구조가 생기면서 다양한 조직에서 오퍼를 받았어요. 일종의 커리어 플라이휠이 만들어진 거죠. 많은 제안 중에서 제가 선택한 다음 스텝은 아마존 신사업 부서였습니다. 다시 한번 가슴 뛰는 일, 비전이 있는 일에 도전했어요.
하지만 그곳은 완전히 정글이었어요. 모든 것을 다 새로 만들어야 하니까 일하기도 어려운 환경이고, 팀원들도 아마존에서 내로라하는 똑똑한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각자 기준이 워낙 높아서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가혹할 정도로 피드백을 주는 분위기였어요. 오히려 저는 이 기회를 살려보자는 마음을 먹고, 한 가지에 집중했습니다. 바로 신뢰 쌓기였어요. 먼저 팀원들 사이에서 나를 서포트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해서 관리했어요. 나아가 리더십과도 1:1을 하면서 사업의 비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눈 대화를 문서로 정리해서 다시 보여주면서 말로만 그치지 않았어요. 리더십들도 그냥 말에서 끝나는 게 아니고 문서와 액션까지 추가로 제안하니까 공감대가 생기고 다른 리더들과도 공유하게 되죠.
그뿐만 아니라 중요하다고 모두 알고 있지만 어렵고 시간이 걸려서 미룬 일들을 자처해서 먼저 했어요. 이렇게 조직 내에서 팀원들과 리더십의 신뢰가 계속 쌓이면서 감사하게도 팀의 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습니다. 다시 선순환 구조가 생겼죠. 저에 대한 신뢰가 생긴 리더십들이 다른 리더에게 저를 추천하고, 새로운 기회들을 제안받게 되죠.
이후에 아마존에서 리더십 패스에 대한 제안과 또 다른 조직에서 오퍼들이 오면서 다시 한번 가슴 뛰는 일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처음 소개해 드린 것처럼 토스라는 회사에 조인하는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또 좋은 기회에 말씀드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길게 저의 이야기를 들려드렸는데 요약하자면 첫 번째 가슴을 따르는 결정들을 했던 것. 그리고, 사람을 놓치지 말자는 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